“며느리가 물건을 계속 훔쳐갔다고 의심하고, 화를 내는 병”, “밤에 잠을 안자고 돌아다니거나, 헛소리를 하는 병”, “벽에 똥칠하는 병”등 치매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가족들이 돌볼 수 있는 수준의 치매를 ‘착한 치매’라고 하며, 인지기능장애 외에 폭언, 폭력 등의 공격성, 배회, 사회적 부적절한 행동 등의 행동증상과 무감동, 불안, 우울, 초조, 망상 등의 심리증상이 주변증상으로 동반되는 치매를 ‘나쁜 치매’라 한다. 의학적으로 나쁜 치매는 행동심리증상(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 이하 BPSD) 상태라고 한다.
■ 행동심리증상(BPSD)이란?
치매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지각, 사고, 정서, 행동 장애에 의해 발현되는 증상들을 말하며 가장 흔한 증상으로는 무감동, 초조, 불안, 과민성 등이 있으며 환자를 직접 관찰하여 확인할 수 있는 불안, 우울, 망상등과 가족 혹은 간병인에 의해 관찰되는 공격, 외침, 동요, 배회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 행동심리증상(BPSD)의 치료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과 간병인을 힘들게 하는 BPSD는 다행히도 조기에 발견하여 적절히 치료하게 되면 인지 저하에 대한 치료에 비해 치료 반응이 좋아 치매 환자는 물론 보호자의 삶의 질을 크게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즉, 나쁜 치매를 착한 치매로 돌리기 위한 치료인 것이다. 치료는 약물치료보다는 비약물치료로 우선 시행하며, 증상 정도에 따라 약물치료를 고려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환경조절, 뇌기능을 자극하는 대뇌활용과 신체활동을 통한 인지장애치료, 증상에 대한 주변인의 적절한 대처등의 비약물치료가 있다. 치매의 BPSD에 대한 약물치료에 있어서도 아직까지 국내 식약처에서 승인된 약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 FDA에서도 치매 행동심리증상의 증상에 대해서 승인된 약물은 아직까지 없다. 비약물학적 치료로 개선이 어려울 경우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항정신병약물과 항우울제등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항정신병약물과 항우울제의 사용에는 내성금단 증상에 의한 장기간사용 어려움, 약물 중단시 증상 재발률 높음의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졸음, 인지기능 저하와 같은 부작용을 동반한다.
■ 행동심리증상(BPSD)과 억간산(抑肝散)
억간산은 조구등(釣鉤藤), 백출(白朮), 당귀(當歸), 천궁(川芎), 시호(柴胡), 감초(甘草)등 7가지 약재로 구성된 처방이며, 설기(薛己)의 '보영촬요'에 최초로 기록되어 있다. 억간산은 주로 간증(癎證), 신경증(神經症), 신경쇠약(神經衰弱), 히스테리, 야제(夜啼), 불면증(不眠症)등의 치료뿐만 아니라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 그리고 치매 치료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 한의학의 오래된 임상적 경험과 다양한 임상연구에서 억간산이 치매환자의 BPSD를 다루는데 효과적이라는 근거가 축적되었으며, 억간산의 치매의 BPSD에 대한 무작위대조군임상시험(RCT)의 메타분석 결과 억간산 복용군에서 행동심리증상에 대해서는 유의하게 감소하였고, 특히 망상, 환각, 초조/공격성도 유의하게 감소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일본신경과학회의 ‘치매질환치료 가이드라인 2010'에서 억간산이 권고항목에 추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2015년 일본노인학회 노인의 안전한 약물치료를 위한 가이드라인(2015)에도 알츠하이머병, 루이소 체병, 혈관성치매에 수반된 BPSD를 개선하며, 동시에 일상생활기능, 가족의 개호부담감을 개선시킨다고 하였다. 또한 2015년 주치의를 위한 BPSD에 대응하는 향정신병약 사용 가이드라인 2판(후생노동과학특별연구사업)에서 BPSD 치료 알고리즘에서는 환각, 망상, 조조, 공격성에 대해서는 억간산을 권고하고 있다.
착한 치매와 나쁜 치매의 관계는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문(門)의 수호신 야누스와 같다.야노스는 시작과 끝의 신이며, 아수라 백작과는 달리 정면과 뒤통수에 얼굴이 있는 두 얼굴을 가진 신이다. 로마인들은 이런 두 얼굴의 야누스를 문(門)과 연관시켰다. 뒤통수의 얼굴은 과거를, 정면의 얼굴은 미래를 응시하여, 과거를 통찰하여 미래를 바라본 신이다. 나쁜 치매의 고통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감당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쁜 치매를 계속 바라보고, 통찰을 통해 착한 치매로 가는 문을 계속 두드려야 한다. 환자와 환자 가족 모두 희망을 잃지 않고 치료에 꾸준히 임한다면, 문(門)의 수호신 야누스가 닫혀있던 문을 열어 줄 것이다.
<동서한방병원·동서병원>